제가 처음 집에 컴퓨터를 설치한게 1999년이고 인터넷을 연결 한 건 2000년입니다.

솔직히 인터넷을 연결하기 전까지는 컴퓨터는 그저 게임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죠 인.터.넷!

처음에 컴퓨터 전원 넣고 익스플로러를 실행 하면 항상 첫 화면은 야후 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야후는 우리나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DDR하는 광고 하나로 떠오르고 있었죠.

(사실 야후가 제 첫화면인건 인터넷설치기사가 그렇게 설정 하고 가서 입니다.)

(지금 봐도 이건 웃기네요 ㅋㅋ)

그로 부터 10년이 지나 지금 2010년의 인터넷 세상은 그 때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발전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고 생각하기에 인터넷상에서 벌어진 큰 사건들을 조사하여 정리해 봤습니다.

 

DSL방식의 대중화

 

그전까지 인터넷은 보통의 모뎀과 ISDN을 통한 인터넷이 대부분이었고 극악의 속도 였습니다. 아마 평균 속도가 모뎀에 따라 다른데 보통 56kbps짜리 모뎀을 썻으니 실제 속도는 5kb~7kb정도 나왔습니다. 이게 저도 어릴때 TV에서나 보던 거라 어느정도 인지 실감이 안가는데 계산해보면 8MB정도의 플짤 하나 볼려고 하면 19분 걸리네요. ISDN은 64kbps인가 했으니 말 다했죠. 모뎀으로 맘껏 인터넷을 하면 전화도 안되는건 물론 당월 전화비가 승천하셨습니다. 친구의 말로는 스타크래프트하나 받고 26만원 나왔다고 하니 도데체 어느정도인지…

하여튼 그런 시대에 DSL방식이 도입되자 사람들은 열광 할 수 밖에요. DSL방식도 모뎀을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값 비싼 전용 모뎀을 살 필요없이 통신사에서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설치만 하면 끝입니다. DSL방식 중에 처음 상용화해서 나온 것이 ADSL인데 정액제에 인터넷 하는 중에 전화도 되니 모뎀이나 ISDN 쓰던 사람들은 설치가능하면 미친듯이 개통 했죠. 빠르고 안정적인 인터넷 덕분에 다양한 웹사이트들과 커뮤니티가 등장했습니다. 지금은 많이들 사라졌지만 아직도 보면 그때 만들어져서 10년 넘게 운영된 장수 커뮤니티들이 있죠.

(유승준의 ADSL 광고, 이 광고로 하나로통신은 시장 선두주자로 나가게 됩니다.)

 

 

엽기사이트의 등장과 노란국물

 

엽기하우스,바부코리아등의 사이트들은 지금으로 따지면 웃대,알지롱과 같은 사이트 였습니다.

특히 바부코리아는 엽기사이트의 선두주사 였죠. 지금생각해도 참 웃긴 자료들 많았는데 아쉽네요.

그리고 노란국물! 이건 정말 왜 유행한건지 그 외 갈색국물,초록국물 그놈의 국물은 왜 이렇게 많은지! 나는 왜 이걸 봤는지!

사람들은 또 왜 이걸 봤는지!지금 생각하면 왜 이걸 굳이 찾아서 볼려구 했는지!ㅠㅠ

 

(바부코리아, 엽기하우스, 엽기즌, 그리고 노란국물의 주인공 ※ 노란국물 영상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역겨워서 올리지 않습니다.)

 

 

가수 백지영 동영상 유출 사건

가수 백지영이 한참 주가를 올리며 활동 하고 있을때 전 매니저와 함께 찍은 섹스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유출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FTP 서버들을 통해 일명 “오양비디오”가 나돌았는데 그 당시에 유출된 백지영 동영상은 지금으로 따지면 소녀시대의 동영상이 유출 된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당연히 파급력은 엄청났고 신문 기사 1면은 물론 언론에서도 사상 최대  스캔들로 나왔던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이때 처음으로 인터넷의 힘과 부작용을 느끼기 시작했구요.

 

 

dcinside와 아햏햏의 등장

“소햏은 주침야활을 하며 면식수햏을 몸소 생활에 실천 하고 있소.”

아햏햏은 폐인문화의 핵심이며 그 심오함은 이해할래야 이해 할 수가 없기는 개뿔… 지금 생각해도 뭔 소리인지

김유식이 만든 dcinside라는 디카관련 커뮤니티에는 각종 갤러리들이 있었고 그 중 엽기갤러리에서 생겨난 말이 “아햏햏”입니다.

“아햏햏”이 퍼지면서 지금의 잉여나 코갤러와는 달리 컴퓨터앞에 계속 있는다고 해서 “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dc는 순식간에 폐인들의 성소로 변모합니다.  합성 자료도 유행하구요.

후에 dcinside는 디카 커뮤니티라기 보단 각 분야의 갤러리로 모인 매니아들의 사이트가 되었죠.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비판하는 역활도 해왔지만 반대로 마녀사냥을 주도 하기도 했습니다.특히 마녀사냥의 대표격인 무뇌충(문희준 지금은 문보살로 불리죠)은 정말 심했습니다.

 

 

(초기 필수요소라고 불리었던 딸기녀,승업햏,소피티아 그외 기타등의 자료가 유행하고 이때 부터 dc 각종 유행들을 만들었습니다. 따른건 이해 하겠는데 저 오른쪽에 소피티아가 왜 떴는지 궁금하시면 인터넷에서 소피티아라고 쳐보시면 압니다.)

 

 

 

와레즈의 등장과 몰락, p2p업체들의 등장

 

인터넷이 빨라지고 대중화 되면서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마녀사냥과 와레즈입니다. 특히 와레즈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 전체를 뿌리 채 꼽아버리죠.

게임회사들은 pc게임 출시는 포기하고 다들 온라인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인터넷상에서 와레즈는 불법 자료를 공유 하는 역활을 했고 각종 소프웨어 부터 성인 자료까지 있었습니다. ming2000,천상와레즈,럭키월드,프리게임등등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적은 수 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자료의 유통은 와레즈 운영자들이 사업체나 공공기관,개인들의 서버들을 해킹하여 자료들을 올려 와레즈의 해당 게시판에 자료를 올렸고 그럴 능력이 안되는 운영자들은 포탈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웹계정에 분할 압축을 하여 자료를 올렸습니다.

사람들은 미친듯이 받아 갔죠. 단순하지만 그 때는 최신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애니 등을 받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자료도 짤리기 일수였고 속도가 안정적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 와레즈가 좋더라 등의 소문도 많았고 같은 때에 이뮬이나 넵스터가 있어도 국내에는 아직까지 생소한 개념이었죠.

한편 와레즈 운영자도 무료봉사를 하는건 아니었습니다. 사이트들을 들어가면 각종 광고들이 많았는데 이 광고들이 와레즈의 주 수입원 이었죠. 그 때문에 압축파일로 올린 자료에 와레즈 이름으로 암호를 걸어놓는 건 당연했죠.

뿐만 아니라 일부 와레즈 사이트를 접속하면 일단 수많은 바이러스와 트로이가 컴퓨터로 유입되어 개인정보를 유출하였습니다. 막장이었죠. 루머로는 유명 와레즈 운영자들 1달 수입이 천만원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와레즈는 번성 했죠.

그런데 어느날 진짜 쌈박한게 나왔습니다. 바로 소리바다!!!!!

 

 

소리바다야 말로 p2p의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우리나라 공유의 역사에서 와레즈를 끌어 내리는 역활을 톡톡히 합니다. 처음에는 mp3만 공유 되다가 나중에는 확장자만 mp3로 변경하면 다른 자료들도 공유 할 수 있다는게 발견 됬고

채팅방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자료들을 교환 했습니다. 와레즈처럼 관리자와 유저가 구분된 방식을 탈피해 드디어 유저들끼리의 공유가 시작한 것이죠.

물론 그전에도 나누미(구루구루 지금의 ipop(곰플레이어 만든 회사))나 당나귀(emule)같은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일반인들이 쓰기엔 좀 불편했습니다.

특히 당나귀는 비공개 그룹에 들지 못하거나 최신자료가 아닌 경우 속도가 쥐약이었고 고생해서 받은 자료가 99.9%에서 멈추는 아름다움에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지 충분했죠.

특히 동영상의 경우 0.1%만 부족해도 재생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받으면서 보는건 불가능 했죠. 하여튼 소리바다는 혁명 그 자체 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를 느낀 성인사이트들과 와레즈는 p2p사이트로의 변신을 시도합니다. 몇몇 성공한 와레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망했습니다. 지금도 어떤 성인사이트는 유명 p2p업체로 남아 있죠.

인터넷상에서 지난 10년간 벌어진 사건들 2부 보러가기